'하차감' 공략한 벤츠, 유독 한국서 훨훨

입력 2019-10-16 17:34   수정 2019-10-17 01:20


메르세데스벤츠의 판매 돌풍이 거세다. 올해 1~9월 세계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.1%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한국에서는 8.2% 급증했다. ‘한국은 벤츠 왕국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.

16일 다임러에 따르면 벤츠는 올 들어 지난달까지 세계 시장에서 181만3019대를 팔았다. 전년 동기(181만1471대)보다 1548대 증가해 제자리걸음을 했다는 평가다. 최대 시장인 중국과 벤츠의 본고장인 독일 판매량은 5.0%씩 증가했지만 미국에서는 0.5% 줄었다. 아시아·태평양(2.3%)과 유럽(0.5%) 지역 판매는 소폭 늘었지만, 북미(-2.5%)와 기타 지역(-8.8%)에서는 내리막길을 걸었다.

한국에서는 유독 무서운 속도로 벤츠 차량이 팔려나가고 있다. 올해 1~9월 한국 판매량은 5만4908대로 작년 동기(5만746대)보다 8.2% 늘었다. 벤츠는 지난달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에 이어 국내 판매 3위에 올랐다. 한국에 공장을 둔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한국GM을 앞질렀다.

업계에선 한국에 부는 ‘벤츠 열풍’의 원인을 세 가지로 본다. 먼저 세련된 디자인이다. 예전에는 벤츠가 중년 남성이 타는 차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요즘엔 2030세대가 선호하는 디자인으로 탈바꿈했다는 분석이다. 벤츠의 판매를 이끌고 있는 준대형 세단 E클래스가 대표적이다. 2009년 디자인이 확 바뀐 9세대 모델이 나온 이후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수입차가 됐다. 가격이 6000만원대에서 1억원을 웃돌지만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을 정도여서 ‘강남 쏘나타’란 별칭이 붙었다.

BMW 아우디 렉서스 등 경쟁 브랜드가 고전하는 것도 판매 호조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. 아우디·폭스바겐이 2015년 ‘디젤 게이트(배출가스 조작)’ 파문에 휩싸인 데 이어 지난해에는 BMW가 잇단 화재 사고로 수난을 겪었다. 올해는 한·일 경제전쟁 여파로 일본차 불매 운동이 일면서 도요타 렉서스 닛산 등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.

최근 1년 새 수입차 판매량(1~9월 기준)이 15.2% 감소하며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벤츠의 독주 체제가 굳어지는 분위기다.

‘벤츠를 타면 성공했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’는 인식도 인기에 한몫했다는 설명이다. 차에서 내릴 때 남들이 바라보는 시선에서 느끼는 만족감인 ‘하차감’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는 얘기다. 1억~2억원대인 벤츠 S클래스 한국 판매량이 세계 3위인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.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“한국에선 좋은 차를 타면 대접을 잘 받는다는 독특한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”며 “조금 무리하더라도 ‘기왕이면 벤츠’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”고 말했다.

박상용 기자 yourpencil@hankyung.com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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